여자 둘이 마포에서 그림 그리고 있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나경, 서희의 공동 작업실

'그림 그리고 있어요' 라는 짧은 소개가 이리도 발랄할까? 이나경과 서희의 작업실은 온기와 에너지로 가득했다. 발랄한 선과 알록달록한 색들로 이루어진 일러스트들 때문일까? 이제 막 마련한 작업실에서 그녀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 중.
작업실이 아늑하네요. 첫 작업실이라고 들었는데요. 그 전에는 어디에서 작업 하셨나요?

나경(순심)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기 전부터 늘 작업실을 갖고 싶었어요. 일상 생활과 구별되는 공간이 있으면 작업에 더 집중이 잘 될 것 같았고 주변에서도 더 이상 백수가 아닌 작가로 봐줄 것 같았어요.ㅎㅎ 집에서 작업하면 아무래도 눈 앞에 당장 설거지나 빨래, 청소 등등 집안일들이 보이기 때문에, 급한 마감이 없을 땐 작업에만 집중하기 어려워요. 자꾸 내일 뭐 먹지? 빨래 다 말랐나? 잡념에 빠지게 되고 이불 보면 눕고싶고 나중에 그려야지 하면서 미루게 되니까요.

서희  주로 집에서 작업했고, 데스크탑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경우엔 노트북을 들고 근처 카페로 출근했어요. 집 근처에서 작업하기 좋다는 카페는 안 가본 곳이 없는 것 같아요.

이 곳 작업실로 오신지 얼마나 되셨나요? 그리고 이 작업실은 어떻게 구하셨어요?

서희  작업실에서 작업하기 시작한지는 아직 얼마 안 되었습니다. 두 달 남짓 된 것 같아요. 사실 순심이 아니면 굳이 작업실을 구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각자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미 집에 공간이 있고, 작업실은 월세 때문에 부담도 되고요. 근데 그러다가 순심이랑 작업실을 갖고 싶다는 얘기를 나누게 됐어요. 작업실을 꾸리면서 작업영역도 확장해보자, 그런 얘기였죠. 그러다 올해에 위치도, 타이밍도 잘 맞아서 같이 쓰는 작업실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나경 작가님, 서울 생활은 어떠세요? ^^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있다면요?

나경(순심)  서울로 이사 오고 마포구에 작업실을 얻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동네에 와 있다.'라는 느낌에 항상 기분이 좋아요. 좋아하는 공간 안에 있는 것이 제가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 중 하나거든요. 머리가 복잡하거나 휴식이 필요할 때 좋아하는 산책길을 걷고,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엔 큐레이션이 된 서점들을 방문하거나 인테리어가 새로운 카페에 가곤 해요.

따로 작업실을 구하지 않고 집에서 작업하시는 일러스트레이터들도 많은데 집과 작업실을 분리해서 생활하면  장단점이 있을 것 같아요.

서희  일단 업무 공간과 휴식 공간이 분리되는 게 생각보다 정말 중요해요. 막연하게 좋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편안하게 휴식하다 잠들 수 있는 것도 좋고요. 새벽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이 줄기도 했어요. 집에선 일 생각을 그만둘 수 있는 것도 좋고, 늦게 업무연락이 와도 '제가 이미 퇴근해서요.' 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도 작업자 입장에서 나름 장점이에요.
그리고 집에서 작업하다보면 모든 일상이 뒤죽박죽이라 질서를 잡기가 어려워요. 일이 많아서 일주일 가까이 집에만 있다 보면 우울해져요. 하루에 한 마디도 안할 때도 생기고요. 근데 지금은 출근하면서 햇빛도 보고, 작업실 오면 순심한테 수다도 떨 수 있어 좋아요. 퇴근하고 집에 가면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태블릿으로 개인작업을 하는데 일상이 훨씬 정리가 잘 되더라고요.

친구와 함께 공동 작업실을 갖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공동 작업실의 장단점이 있다면요?

서희  같이 작업하는 순심과 공동 작업실을 갖기로 한 이유는 서로 작업을 응원해 온 시간이 꽤 되었고, 그만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작업에 대한 생각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순심이 주는 피드백은 제가 원하는 포인트에서 솔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요. 서로의 작업 세계를 잘 이해하면서 포인트를 짚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업무적으로나 친구로나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 입장에서는 도움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같은 공간을 쓸 때 서로 작업에 대한 시너지를 잘 내고 노력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장점이 정말 많아요. 서로 관심사도 나눌 수 있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요. 직장인인 친구들은 공감하기 어려운 프리랜서들의 업무 스트레스도 얘기하기 편해요.
두 분은 보통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작업실에 계세요? 작업실에 머무는 동안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인가요?

나경(순심)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동료이자 친구인 서희 작가님과 공동 작업실을 갖게 되어 즐거워요. 일적인 고민도 상담할 수 있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편안하게 나눌 수 있어서 정서적으로 든든해요. 따로 약속을 잡지 않아도 작업실에 가면 만날 수 있어요. 믿을 수 있는 친구와 공간을 함께 쓰는 것은 좋은 경험이라 생각해요.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업실을 구하려고 함께 공간을 찾아보면서 우리 작업실 생기면 여기서 맨날 드로잉도 하고 나무로 가구도 만들고 캔버스 그림도 그리고 굿즈도 만들어 사진도 찍자면서 앞으로 할 수 있는 작업들을 상상하는 것도 재밌었어요. 꿈꾸었던 것들을 하나씩 이루어보려고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습니다.

서희  순심이 오전 중에 일찍 출근하는 편이에요. 저는 차 막히는 시간 지나고 점심 시간 쯤에 출근해요. 그리고 작업실에서 제일 좋은 시간은 11시쯤이에요. 햇빛이 예쁘게 들거든요.  주말에 일찍 출근하면 그 시간이 제일 좋은 것 같더라고요. 퇴근 시간은 각자 상황에 따라 매번 달라요. 외주가 끝나도 작업하고 싶은 날은 늦게까지 할 때도 있고,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만 피해서 일찍 퇴근하거나 늦게 퇴근하고 있어요.

일러스트 작업을 전업으로 선택하신 결정적인 이유나 요인이 있나요?

서희  그림을 그리는 일이 제일 좋았어요. 사회 초년생일 때 결심한 것 중 하나는 ‘노동으로 자아 실현하지 말자’였지만, 제 성격이 그렇지 않았어요. 디자인이나 미술치료, 바리스타 같은 다른 분야로 가는 것도 많이 고민하고 파트타임 근무도 해봤는데, 그림 그릴 때가 제일 좋더라고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작업하고, 대단하지 않아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요즘 작업하시는 일러스트 작품들에 대해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나경(순심)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며 가장 좋은 점은 좋아하는 일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좋아하는게 일이 되면 힘들지 않냐라는 말도 듣지만 좋아하기 때문에 덜 지치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해결해 나갈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주로 오일 파스텔과 색연필을 사용한 초상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요즘은 색채에 관심이 많아서 색이 주는 감정과 느낌에 대해 연습하고 있습니다. 따뜻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서희  요즘은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하나 계속 고민이 많아요. 외주만 반복해서 하다 보니 개인작업을 발전시킬 시간이 많이 모자라더라고요. 가장 최근에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들은 사실 누구나 쉽게 좋아할 것 같은 색감은 아니에요. 하지만 더 많이 그리다보면 제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스타일과 대중적이고 트렌디한 스타일 사이에 좋은 절충안이 나올 것 같아요.
저는 배색을 많이 신경 쓰고 색면이 넓게 들어가는 그림들을 좋아해요. 그리고 그림 안의 오브젝트들을 통해서 여러 감정이나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해요. 그렇다보니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뭘 그린 그림인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런 분들이 제 작업을 보고 어떤 이야기가 떠오르는지,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지 듣고 싶어요. 사람들이 서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평소 수집하거나 , 구매하기 좋아하는 물건이 있나요?

나경(순심)  화집 모으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이사를 자주 다니는 편이라 줄일 수 있는 짐은 최소한으로 만들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림을 그리다 보니 종이도 쌓이고 재료도 쌓여 다른 짐을 아무리 줄여도 크게 차이는 나지 않아요. 그래서 계절별로 몇 벌의 옷만 남겨두고 잘 안 입는 옷은 과감하게 잘 버려요. 책도 읽은 뒤엔 중고매장에 되팔고 다른 물건들을 수집하는 편도 아니구요.
하지만 디자인 서적이나 좋아하는 작가의 화집들은 아무리 무거워도 꼭꼭 챙기고 늘 가까이에 두려고 해요. 요즘도 눈여겨보고 찜해 놓은 화집들이 쌓여 있어요. 연말 즈음에 저에게 주는 선물로 한 권 구매하려고 합니다.

서희  뭔가를 수집하는 성격은 아니어서, 만족할 만큼만 가지면 좋은 것 같아요. 그나마 모으는 게 있다면 빈티지한 유리컵이나 예쁜 머그컵을 보면 사서 모아요. 그래서 혼자 사는 집에 컵만 많아요. 조만간 당근마켓으로 정리하고 다시 새로 사려고요.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보고 싶으세요?

서희  저는 항상 원화 작업에 이루지 못한 꿈이 있어요. 작업실도 생겼으니 캔버스에 원화 작업을 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안 그래도 순심이랑 올해가 가기 전에 20호 캔버스를 하나 채우자는 목표를 세웠어요. 맘에 드는 작업으로 잘 마무리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내년 계획을 간략히 알려주세요.

서희  내년에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아요. 일단 제 그림으로 엮은 독립출판물을 내고 싶어요. 메신저 이모티콘도 내려고 작업하고 있고, 네이버 스토어도 (아직은 마음으로만) 준비하고 있어요. 이제 물건 쌓아둘 수 있는 작업실도 생겼으니까 차근차근 시작해보려고 해요. 외주와 개인작업을 잘 병행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경(순심)  작업만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만큼, 앞으로는 크기가 큰 그림을 시도해보려 합니다. 형태는 단순하지만 즉흥적인 선으로 그리고 따뜻한 색으로 가득 채운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최근 독립출판물 <Portrait NOTE>와 <Sanchaek NOTE>를 만들었는데요. 작업실에서의 일상을 담은 그림들도 엮어서 시리즈물로 제작하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Shin Jihyun
Lee Ju-yeon
이나경, 서희 공동 작업실
일러스트레이션, 디자인
이나경 작가와 서희 작가는 그림 그리고 글 쓰는 것이 좋아 함께 마포구에 작업실을 마련한 친구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동료들이다. 각자 기업과 함께한 다양한 일러스트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출판과 독립출판을 통해 그림책을 꾸준히 발행하면서 전시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이나경
2020 독립출판 <Sanchaek NOTE>
2019 독립출판 <나는 날마다 나를 생각해>, <나는 날마다 너를 생각해>
2019 출판 <우리들의 자일 파티> 그림 / 현북스
2018 독립출판 <Portrait NOTE>, <The little dog>
 
서희
2018 출판 <댄스, 푸른푸른!>, 창비교육
2018 출판 <젊음, 무엇이 있다!>, 르포지
2018 출판 <진심을 말해버렸다>, 달꽃
2018 독립출판 <안녕, 당신>
2017 출판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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