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날 보통의 시간 보통의 장소

여행 드로잉 작가 옹다 Ongda의 작업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가 그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 앉아 낯선 곳의 일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그림. 리옹, 스트라스부르그, 포마드 등 프랑스 중소 도시의 평범한 일상을 차분히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한 순간을 반짝이게 담고 있다. 설레임과 동시에 휴식을 주는 드로잉으로 가득한 옹다 (Ongda)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보통의 날이 특별한 날이 되어 버린, 여행이 아득한 바램이 된 팬더믹의 한 복판에서.
그림을 보고 있으니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제 그림이 낯선 곳의 일상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된다는 걸 팬더믹 상황에서 알게됐어요. 여행을 자유롭게 갈 수 없게 되니 문득 뭘 그려야하지?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된 거에요.

자세히 보면 어떤 날의 한 순간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18년부터 1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프랑스를 여행했는데 그 때 제 눈에는 아무 것도 안 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한국에서 나름 치열하게 일을 하다 가서인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사람들은 행복하고 충만해 보였어요.
파리에 있는 어느 공원에 갔었는데 아무도 없는 잔디에 혼자 앉아서 책을 읽는 여성이 눈에 들어왔죠. 일단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아무 것도 깔지 않은채 잔디에 털썩 앉을 수 있는 그녀의 자유로움에 감탄했던 것 같아요. 제가 공원 안에 있는 식물원을 둘러보고 나왔는데도 같은 자세로 책을 읽고 있었어요. 특히 잔디를 둘러 싼 큰 나무가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아주 작아보이는 사람, 즉 대자연과 인간의 대조도 도드라졌구요.
여행을 떠난 곳에서 일상의 한 순간과 그곳에 있는 "사람"을 그리나요?

네. 제 작품 중에 초록의자 시리즈가 있는데 모두 공원에 있는 초록색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그렸어요. 일광욕을 하거나 책 또는 신문을 읽거나 누군가와 조용히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어요. 마치 어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그 사람들만의 시간이 멈춰진 것 같은 느낌이에요.

사람을 그리는 특별한 이유는요?

사람은... 음... 제가 사람들 관찰하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제가 그리는 사람의 얼굴에는 눈코입이 없습니다. 대화를 나누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 그렸기 때문인데요, 눈코입을 그리고 표정이 생기면 생각이나 마음을 제가 일방적으로 정해버리는 것 같아요. 사실 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어떤 마음인 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그런 제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 그림을 보는 분들도 그런 느낌을 같이 느끼면 좋겠어요.

사람을 그릴 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은?

작은 움직임에 초점을 맞춥니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작은 움직임이 있거든요. 누구가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거나 심각한 이야기 중인지 턱을 괴고 있어요. 특별히 재미있는 행동이 포착되면 배경 전체를 없애기도 해요.

그럼 현장에서 바로 그림을 그리는 건가요?

시간이 많을 땐 현장에서 스케치를 할 때도 있지만, 여행자이다 보니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일단 사진으로 남겨둡니다. 나중에 사진을 보면서 그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을 떠울리며 그려요. 그리다가 숙소로 돌아와 완성할 때도 있어요.
 
그림에 나무도 많이 등장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나무는... 음... 제가 바다나 강보다는 숲을 더 좋아하는 것 같긴 해요.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식물을 정말 열심히 키우셨어요. 그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도시보다는 전원이 좋습니다. 제가 다녔던 여행지 대부분이 대도시가 아닌 시골이나 소도시였어요. 그렇다보니 공원, 골목길, 조용한 숲길이 많았습니다.

하루 중에서 좋아하는 시간은?

나무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걸 보는 게 제일 좋아요. 나무는 생김새나 그때 그때의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그려요. 점이나 선을 이용해 나뭇잎을 패턴처럼 만들기도 하고 찰필로 뭉개서 느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해가 길어지는 시간, 오후에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긴 햇살이 물결처럼 일렁이는 시간을 좋아해요.
 
프랑스에서는 어디가 제일 기억에 남나요?

리옹이요. 여동생이 6년 째 살고 있어요. 리옹은 작아서 이삼일이면 다 돌아보고 금새 적응할 수 있는 동네에요. 요리로 유명한 동네라 줄곧 먹고 다녔어요.

기와 카페 프로젝트

동생이 그 곳에서 만난 프랑스 사람과 결혼해서 기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요. 기와집을 모티브로 나무 대들보를 넣어 건물을 지었고 음료나 디저트를 낼 때 소반을 사용하기도 해요. 한국 빙수 기계로 빙수도 만들어요. 동생이 부탁해서 2020년에 이어 두번째로 기와 카페 달력을 만들었어요. 작년 달력의 주제는 리옹과 서울이었죠. 이 밖에 기와 카페의 로고를 만들고 메뉴판과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홍보 이미지도 만들었죠. 재미있었어요. .

또 어디를 여행했나요?

친구들이 와서 차로 브루고뉴 지방과 독일과의 국경 지대를 돌아보았어요. 동생과는 버스 타고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바르셀로나도 갔어요. 리옹은 프랑스 전역과 유럽을 여행하기 정말 편리한 위치에요. 특히 부르고뉴 가는 길에 포마드라는 마을에 들렀는데 원래 가려고 했던 식당이 문을 닫는 바람에 방황하다가 그냥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그 식당에서 보낸 뜻밖의 맛있는 시간을 그림으로 그리게 되었어요. 여러 명이 돌아가며 사진을 찍었고 그걸 합쳐서 그렸어요.
 
옹다 Ongda, 죽녹원, 담양 Jardin de Bambou Jungnogwon, 2020, 서울, digital image, print on paper, 42 x 29.7 cm
Copyright 2021 (c)옹다 Ongda
옹다 Ongda, 물의 거울, 보르도 Le Miroir d’eau, 2020, 서울, digital image, print on paper, 52 x 29.7 cm
Copyright 2021 (c) 옹다 Ongda
그림 그리는 도구는 주로 뭘 쓰시나요?

블랙윙 연필 내추럴 컬러를 제일 좋아해요. 이 연필은 종류가 많지 않아요. 대략 세 종류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 특징은 아주 부드럽다는 거에요. 고흐 등이 사용했다고 해서 더 유명해졌고 지우개가 달려 있어요. 필요에 따라 진하거나 옅은 연필 중에서 골라 쓰는 편이에요. 친구에게 수제로 만든 가죽 연필심 덮개를 주문 제작해서 쓰고 있는데 연필심을 보호할 수 있어서 아주 좋아요.

채색은 어떻게 하나요?

그림 그릴 때 색을 많이 쓰지 않는 편이고 포인트로 한 두가지 색을 쓰는 정도에요. 예를 들어 초록의자 시리즈는 한지에 물감으로 그린 건데 의자만 초록색으로 칠했죠. 제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의 일부분을 노란색이나 빨간색으로 채우기도 해요. 예전에는 스케치를 하고 완성한 뒤 채색을 할 때 과슈나 수채화 물감을 주로 사용했는데 요즈음은 주로 디지털로 채색 작업을 해요.

도구 선택의 기준

저처럼 낯선 곳에서 한 순간을 그리려면 도구가 간편하고 빠른 것도 중요해서요.  프리즈마 색연필 한 두가지 색 정도를 들고 다니면서 포인트용 채색으로 사용하기도 하구요. 아크릴펜도 과슈나 물감보다는 빠르고 손쉽게 채색할 수 있어요. 아, 까렌다쉬 네오컬러 오일 파스텔도 부피가 크지 않아 다섯가지 색 정도 휴대할 때도 있어요.
찰필은 심 없이 종이만을 말아서 연필 모양으로 만든 건데 번짐 효과를 내고 싶을 때 사용해요. 커다란 나무의 푸르른 잎을 표현할 때 찰필을 사용합니다. 공원 잔디에 앉아 책을 읽는 여성의 주위에 있는 나무를 표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궁금해요.

큰 드로잉을 그리기 전에 스케치 단계에서 보통 연필로 그리는데 저는 다른 사람보다 스케치를 좀 더 정성스럽게 하는 편이에요. 연필 그림으로 분위기를 대충 잡아 놓고 마음에 들면 좀 더 정교하게 완성해요. 연필 그림만 한 250점 쯤 있을 거에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달러 로니의 스무스 헤비웨이트지 A5 크기 노트(25매) 기준으로 한 열 권쯤 그렸나봐요! 일단 연필 그림이 마음에 들면 부분적으로 노란색이나 빨간 색 등 한가지 색으로만 부분 채색을 해요.

노트 말고 스케치북에도 그리나요?

A5보다 크기가 큰 스케치북에 그릴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필로만 아주 공을 들여서 그려요. 망하면 안된다는 마음가짐으로(후후). 그런 다음 연필 그림을 스캔해서 컴퓨터로 옮겨 전체적으로 색을 입히거나 부분 채색을 해요. 주로 포스터나 달력 등 크기가 큰 작품을 이런 방식으로 완성하죠.

가장 좋아하는 노트는?

달러 로니의 스무스 헤비웨이트 지 노트 A5 사이즈요. 연필의 결을 표현하기 좋아요. 잘 그려지는 종이고, 연필과의 합이 좋다고 할까요?
손바닥 만한 크기의 9X14cm 크기의 미색 내지 노트는 항상 휴대하고 다니면서 뭔가 그리고 싶을 때 바로바로 그려요. 작아서 그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기 때문에 기록용으로 딱이에요.
 
파리. 어느 평일 낮 4시 한 공원,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유모차를 끌고 나온 수트입은 남자,
어린 사내아이 둘을 데리고 놀러 나온 어느 아빠, 속옷만 입은채 태닝하는 사람들,
아무것도 없이 그저 잔디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는 사람들, 수많은 초록의자,
모든 순간이 흥미로워 보였고, 평범한 내 일상과 다른 것 같은 그 순간들을 기록했다.

1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의 프랑스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이곳에서의 일상을 찾으려 했던 시간.
갑자기 팬데믹으로 전세계가 멈췄다.
이제껏 평범한 일상을 기록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보다 더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없는 상황이 되면서
나의 일상에는 변화가 찾아왔고, 가까우면서도 멀어져버린 추억에 나는 그저 이 시간이 흐르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있는 시간동안 꽃은 피고 봄은 오고,
멀리 나가고 싶은 날엔 사진첩을 뒤지며 과거여행을 하면서 그리움으로 가득찬 나만의 일상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전히 작은 날들을 기록하고 추억한다.
따스한 햇살과 바람까지도 그리워진 2020년의 봄냄새를 기억하기 위해.

- 보통의 날 전시 서문 중에서 발췌
2022 한국 그리고 프랑스 En Coree et France, 2022년 달력이 출시되었습니다.
Copyright 2021 (c) 옹다 Ongda
Ashley Y. Choi
Studio RANG
옹다 (ONGDA)
드로잉, 일러스트레이션
드로잉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옹다(Ongda) 작가는 스치듯이 사라지는 아주 평범한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면서 활동 중인 그녀는 일상의 모든 순간들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으면서 이를 기록하는 방법들을 관객들과 공유하고 있다.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 졸업
 
2020 단체전, 여행갈까요, 뚝섬미술관, 서울
2020 개인전, 보통의날, 책책, 서울
2019 단체전, (H)OR’DINAIRE, Galerie 59 rivoli , 파리, 프랑스
 
2015-현재 옹다 드로잉 클래스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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