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기록자, 해운대에서 일주일

이모먼트 세 번째 팝업, 김한나 <먼지 기록자> , 부산 해운대 대림맨숀

네모 반듯하지 않은 공간, 손때 묻은 빈티지 가구가 가득한 대림맨숀 107호. 매일을 기록하고, 매일을 보관하는 먼지기록자가 머물다 간 일주일을 회상합니다. 김한나작가의 첫번째 한정판 포스터북 출시와 함께 부산 해운대 대림맨숀 107호 에크루에서 팝업전시가 열렸습니다. 김한나작가의 최근작인 페인팅과 드로잉 작품이 빈티지 가구와 어우러져 추운 겨울날씨가 무색하게 따듯했던 전시를 소개합니다.
먼지 기록자    

청소를 했다.
삐뚤어진 것은 바로 세우고
엉뚱한 곳에 있는 물건은 바른 곳에 놓고
빗질을 했다.
책상 밑에는 지우개 가루, 심이 부러진 연필, 찢어진 종이가 있었다.
무엇을 지웠나
무엇을 그렸던가
쓰레받기에 전부 쓸어 담았다.
한가득하였다.
하나하나 기억이 났다.
무엇을 지웠는지
무엇을 그렸는지
손에 힘을 준 날 망가진 연필들
머리에 힘을 준 날 찢은 종이들.
꽃잎도 있었다.
지난 봄 바람에 날아왔었다.
죽은 벌레도 있었다.
여름에 창문으로 날아왔었다.
쫓아내려고 했지만 천장에 딱 붙어서 꼼짝도 안했다.
잘게 남아 먼지처럼 되어 버린 것을 기억하기로 했다.
곱게 깎은 연필과 잘 잘라진 종이 꺼내
그렸다.
쓰레받기에 남아 있는 것들을.
쓰레받기에 남아 있는 것들을 다 그리고 난 후
소용없어 보이지만 진짜 소용있는 것을 그렸다.
그리고 먼지 기록자의 기록법이라고 불렀다.
쓰레받기에 남겨진 것들은 너무 아름다웠다.
고이 담고 싶었다.
언제나 꺼내 보고 싶었다.
찾아서 그린 먼지 담을 상자를
각각의 형태에 맞게 만들었다.
먼지기록자의 보관법이라고 불렀다.
차곡차곡 상자가 쌓였다.
 
반듯하게
 
청소를 잘 마쳤다.

한나와 토끼
Hanna Kim, LIUSHEN
LIUSHEN
김한나
페인터
김한나 작가는 토끼와 한나의 일상을 이야기합니다. 김한나에게 토끼는 단순한 작업소재가 아닌 절친한 친구이자 내면을 지탱해주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작가의 작업은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며 함께 지내는 김한나 자신과 토끼에 대한 기록입니다.